결혼을 앞두고 그와 살림을 합치다.
그가 가진 가전과 가구, 이 집에 왔을 때 설레며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들였을 물건들과
내가 자취하며 짊어 온 추억의 물건들이 합쳐지다.
그의 냉장고는 산 지 2년이 지났는데도 비닐도 벗기지 않은 상태도 살았다.
내가 시원하게 비닐을 뜯어 버렸고 종종 깨끗이 냉장고도 닦아준다. 우리를 먹게 하고 채우게 하는 고마운 저장고!
내가 서울 집에서 홈카페 기분을 내며 사용했던 식탁이 거실에 자리한다.
처음은 가지고 있던 빨간색 체크무늬를 식탁보로 덮어주다 세탁하게 되면 흰색 식탁보로도 바꿔 분위기를 환기했다.
요즘은 원목 테이블 그대로 사용하는데 나는 원목의 따뜻한 색감도 좋다.
그와 식탁에 어울리는 의자와 렌지대를 사러 근처 가구점에 갔다. 원래는 의자 하나만 더 사려고 했는데
원목에 어울리는 의자 두 개와 아담한 회색 렌지대를 구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가격이 있어서 놀랐지만 총알처럼 당일 배달이 가능해서 너무 좋았다.
거실에 새로운 물건이 채워지는 순간 우리가 이제 같이 사는 곳이구나-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그가 살고 있던 공간에서 내 물건을 정리하고, 동선에 따라 배치를 변경하다.
집에 들어올 때 사 왔던 목화솜이불과 깔개. 신혼이라 깔끔한 흰색 이불을 가지고 싶었지만 계속 관리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
무엇보다 꽃무늬 포인트에 마음이 사로잡히다. 나도 역시 꽃을 사랑하는 사람.
그가 목화솜이불을 사용해 보니 왜 좋은 지 알겠다며 나의 안목을 극찬했다. 겨울에 사용할 때는 솜이불이 훈훈했는데
사계절용으로 샀지만 여름은 제외! 요즘은 그보다 더 얇은 이불을 덮고 있다.
그가 산 천연소재 이불도 오래된 것인 줄 알고 버리자고 했는데 없었으면 큰 일 날 뻔했다. 현재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으니!
가지고 있던 책을 나누고, 비우고도 책장에 여러 권 있다. 그와 서로 선물로 주고받던 책들도 있었고
다시 읽고 싶어서 가지고 있던 책도 있다. 봄에는 가지고 있는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도통 책을 손에 지니지 않고 있다. 반성해야지
그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활용해서 수납력 높이다.
그를 오래 봤으니 그가 물건을 많이 가지지 않는 사람인 것도 잘 안다. 그와 나는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이 집에서 그는 자주 쿠팡으로 물건을 소유하기도 했다. 내가 이 집으로 들어온 이후로 그렇게 시키지는 않지만
휴지와 세제와 같은 생필품, 청소 용품, 컵과 그릇들의 재고가 여러 개 있었다.
딱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가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의 쓰임을 찾아 주기로 했다.
새로 사는 건 안되고, 버리는 것도 더 쉽지 않다.
생필품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또 사는 실수를 할 때가 있다. 그가 이전에 자취할 때 쓰던 선반이 베란다에 있는데 수납 바구니를 이용해 생필품을 분류했다. 나중에는 이불을 베란다에 보관하면서 리빙박스에다가 옮길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반년동안 야무지게 있던 재고를 사용했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물건인 수건을 교체하다. 주변에서 받은 수건도 있고 한번 사면 오래 쓰는 그의 성격을 닮아 버리지도 못하는 수건들. 나의 원칙은 새로운 물건을 들이면 오래된, 쓰임이 지난 것은 비운다.
엄청 오래된 것은 버렸지만 그래도 좀 더 쓰다 버릴 수 있는 헌 수건들은 농장에서 걸레로 사용될 예정이다.
중학교를 졸업을 앞두고 선생님이 롤링페이퍼를 나눠주셨다. 나를 소개하는 글귀를 적고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거였는데
내가 나를 소개하며 적은 글귀는 이랬다.
ㅡ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변하지 않는 가치관이 있다면 그때 생각한 마음이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미니멀 라이프와 닮아있고 제로웨이스트에 가깝기도 한 것 같다. 작은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걸까?
아마도 놓치지 않고 싶고, 익숙하고 친숙한, 내가 가진 것.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한 욕망은 아주 가끔이고 가진 것은 가지게 되는 순간부터 욕심도 사라진다. 소유란 것은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을 작은 것이라고 적은 게 아니었을까?
어렸을 때가 깊이 있게 생각한 것은 아닐 텐데 또다시 생각해 보면 어려운 것도 같네
작년 작은 집에서 내 공간을 되돌아봤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것들만 남아서 아득히 좋다.
그래서 더 주변을 정리하고 꼭 같이 가야 할 물건들을 더욱더 선별하지 않았나
더 욕심내기보다 현재 가진 것을 소중히 하면서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
올해는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곧 다른 집으로 이사도 가야 할 텐데
이사하게 되면 내가 가진 물건들을 다시 정리하고 바라볼 시간들 가져야지
정돈되고 정리된 지금을 좀 더 소중히 남겨두고 싶어서 기록한다.
고맙습니다.